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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story/옛그림보기

신윤복의 봄 나들이

by May born JCY 2008. 9. 22.

화가들은 반추상화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모델을 사용한다. 모델 없이 그려도 그보다 낫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도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린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모델에게 받는 특별한 느낌 때문이다. 화가의 입장에서, 완성된 그림이란 모델을 관찰하면서 받은 느낌의 결실일 뿐이다. 세심한 관찰은 그림그리기의 기본이다. 그래서 머리로 그린 그림과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그림은 다르다. 더욱이 생활정경을 담은 풍속화는 세심한 관찰과 실감나는 묘사가 생명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자신의 뜻을 피력하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면, 풍속화는 사람 사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풍속화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확인할 수 있다.





■봄나들이에 나선 세 쌍의 한량과 기생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화는 회화성뿐만 아니라 당시 문화 사료로서도 가치가 뛰어나다. 왜냐하면 선비에서부터 부민층까지 여러 인간들을 신분, 성별, 나이 등에 걸맞게 복색이나 성격을 마치 기록하듯이 묘사해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림을 바탕으로 복식을 연구한 논문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우리가 조선시대 기방과 복식을 알 수 있는 것은 기록을 통해서다. 하지만 문자로 차림새를 상상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런데 혜원은 생생한 묘사로 당시의 복식을 손에 잡힐 듯이 보여준다. 신윤복의 그림은 복식사나 회화사적으로 두루 가치가 높다.

‘연소답청’은 혜원의 뛰어난 관찰력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다. ‘답청(踏靑)’은 ‘푸른 풀을 밟는다’는 뜻으로 봄나들이를 말한다. 이 그림은 봄나들이에 나선 세 쌍의 남녀가 벌이는 유머러스한 광경을 담고 있다. 기생에게 잘 보이려는 듯 부잣집 한량들은 온갖 멋을 다 부렸다. 게다가 체면불구하고 기생의 시중을 든다. 전혀 선비답지 않다. 말에 탄 기생이 한 손을 내밀자 한량이 얼른 담뱃대를 건네준다. 파격적이다. 부인 앞에서는 엄두도 못 낼 행동이다.

■갓을 벗고 기생의 시중을 드는 한량

우리나라의 겨울은 춥고 길다. 자연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남녀노소 누구나 같다. 그러다가 산야에 파릇한 기운이 돌고 진달래가 홍조를 띨 때쯤이면, 모두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간절해진다. 이 그림은 이런 상황과 마음에 바탕한 것이다.

언뜻 보면 그림의 구성이 산만하다. 하지만 한량과 기생은 모두 오른쪽 만남의 장소를 향하고 있다. 두 갈래 길에서 위쪽의 두 쌍은 담배를 피며 다소 여유를 즐긴다. 반면에 아래쪽 한 쌍은 서둘러 오고 있다. 옷자락이 바람에 날린다. 약속시간이 늦은 모양이다. 한량들의 행동이 재미있다. 신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 그렇다. 오른쪽의 말고삐를 쥔 한량은 말구종의 벙거지를 쓰고서 검은 띠를 허벅대님으로 질끈 매고 있다. 근엄한 선비의 차림과는 거리가 멀다. 말구종 되기를 자원한 것이다. 왼쪽 아래에서 급히 달려오는 한량은 아예 갓을 벗어서 짊어지고 있다. 또 오른쪽 말구종은 한량이 벗어준 삿갓을 손에 쥐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뒤따른다. 한량의 차림새도 풀어졌고, 한량과 말구종의 위치도 바뀌었다. 얼마나 좋으면 저런 행동이 나올까 싶을 정도다. 가관이다. 어여쁜 기생과 함께 한 봄나들이가 일체의 격식을 무시하게 만든 셈이다.

■혜원의 뛰어난 관찰력과 연출력

혜원 풍속도의 특징의 하나가 주제에 어울리게 설정한 배경이다. 어스름한 골목, 연못, 계곡, 폐가, 우물 등으로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그런데 ‘연소답청’에는 계절을 알려주는 장치가 하나 있다. 그것은 화면 위쪽에 피어 있는 연분홍의 진달래다. 이 진달래 때문에 계절이 4월쯤임을 알 수 있다. 진달래가 없다면 우리는 그림 속의 계절을 알 수가 없다. 혜원은 그림에 ‘낙관’을 찍듯이 진달래를 그렸다. 오른쪽 기생은 트레머리에도 진달래 꽃가지를 꽂고 있다. 봄나들이를 강조하는 상징물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처리한 진달래로, 남녀들의 나들이에 실감을 더해준다. 겨우내 집안에만 있다가 꽃피는 호시절에 봄나들이에 올랐으니, 들뜬 기분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혜원의 탁월한 관찰력이 빚어낸 그림은 감상하는 재미가 각별하다. 인간 유형과 세상사를 꼬집어내고, 인물들의 심리를 꿰뚫는 관찰력이 놀랍다. 이는 그만큼 혜원이 인간을 유형별로 깊이 연구했다는 증거다. 인물들의 심리와 통하지 않고서는 그런 그림이 나올 수가 없다.

흔히 영화에서 배우들의 캐릭터가 살아 있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배우가 자기 배역에 완전히 동화가 되었을 때 하는 말이다. 그만큼 배우의 몰입과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혜원의 그림에 출연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배역은 상황에 완전히 녹여져 있다. 어떻게 저런 미묘한 광경을 포착했을까 싶을 정도다. 혜원의 그림은 섬세한 관찰의 산물이다. 그런 관찰에 감각적인 기량이 더해져 수작을 낳은 것이다.

출처 : 2007.04. 파이낸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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