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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지혜

최초의 디카 3.8㎏ 초우량 ‘베이비’

by May born JCY 2010. 1. 16.

요즘 보급형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일명 똑딱이)도 1000만 화소 이상 지원한다. 디에스엘아르 카메라(렌즈 교환이 되는 디지털카메라)는 2000만 화소를 넘었다.


‘화소’는 디지털카메라의 CCD(또는 CMOS: 이미지센서)에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점을 말한다. 이 점들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화소가 많을수록 그만큼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하지만 화소수가 클수록 이미지 파일의 크기도 커진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니콘 D3X가 지원하는 화소수는 2450만 화소. 압축하지 않은 데이터파일(RAW 파일)로 촬영할 경우 이미지 파일 1장의 크기가 무려 50MB. 흔히 사용하는 4GB 메모리카드를 넣어봐야 약 80장 정도만 촬영할 수 있다. 이 파일을 후보정하려면 컴퓨터도 최신형이어야 ‘버벅’대지 않는다.

결론은 화소수가 클수록 돈도 ‘무지’하게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4×6인치 사진을 인화하는 데 필요한 화소수는 200만 화소면 충분하다. 하지만 기술은 소비자의 필요가 아니라 시장의 법칙에 따라 개발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화소수는 얼마나 될까. 1976년 코닥에서 근무하던 젊은 엔지니어 스티븐 새슨이 개발한 ‘프로토타이프 올 일렉트로닉 스틸 카메라’의 화소수는 고작 1만 화소였다. 이 카메라는 여러 회사의 부품으로 몸체를 만들고 렌즈는 당시 코닥에서 생산하고 있던 슈퍼 8㎜ 무비카메라용 중고 렌즈를 사용했다. 이 렌즈에는 아날로그 이미지를 디지털화해주는 회로기판이 6개나 붙어 있었다.

니켈 카드뮴 전지는 16개 달려 있었다. 가장 중요한 부품은 역시 열 받으면(?) 작동이 멈춰버리는 1만 화소짜리 CCD다. 하지만 이미지를 디지털 파일로 바꾼들 저장할 곳이 없으면 무용지물. 일렉트로닉 스틸 카메라의 저장장치는 카세트테이프였다. 이것저것 부품을 모두 합쳐 3.8㎏의 육중한(?) 무게를 가진 ‘일렉트로닉 스틸 카메라’에 저장된 이미지를 보려면 또다른 장치가 필요했다.

요즘처럼 엘시디(LCD)에 바로 촬영된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티브이 화면으로 이미지를 변환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1장의 이미지를 저장하는 데 23초의 시간이 필요했고, 다시 읽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다. 휴대용이라고 하기엔 무겁고, 다루기도 힘들었던 이 카메라를 스티븐 새슨과 동료들은 ‘베이비’라고 불렀다.

한 젊은 엔지니어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디지털카메라는 필름의 전성시대를 한껏 누리고 있던 코닥의 입장에선 시장성이 없어 보였다. 완성품을 만들려면 투자도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회사 경영진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베이비’는 사내 시연회에서만 반짝 소개된 뒤 잊혀졌다.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26년이 지난 2001년이었다.

그사이 캐논, 니콘, 소니 등 일본 카메라회사들은 디지털카메라 완제품 시장에서 완벽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코닥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것만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연필처럼 쓰기 편한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코닥의 창립자 조지 이스트먼(1854~1932)이 당시 살아 있었다면 분명 ‘베이비’를 알아봤을 텐데….

글 조경국 <포토넷> 기자·사진 pluggedin.kodak.com

출처: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987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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