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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story/옛그림보기

마니아와 프로

by May born JCY 2006. 10. 8.
조정육의 옛그림 읽기

옛 동물화 읽기



▲ 변상벽, <고양이와 참새>, 비단에 담채, 93.7×43cm,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시대, 어느 분야든 자기가 하는 일이 좋아 완전히 그 일에 미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마니아들에 의해 인류의 역사는 보다 풍요로워지고 다양해진다. 물론 역사속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전문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남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 할 정도로 자기 일에 몰입했을 때 일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대충대충 설렁설렁해서는 결코 프로가 될 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 살아갈 때 마니아는 행복하다. 비록 배고프고 피곤해도 행복하다. 내가 이 지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곤궁함을 견뎌낼 수 있다.

광기(狂氣)를 뜻하는 ‘마니아’(mania)는 어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일, 또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까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친 사람을 의미한다. 반면 전문가를 뜻하는 ‘프로’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의 준말로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를 뜻한다. ‘프로’한테는 마니아에게 엿볼 수 있는 광기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이성적인 그 무엇이 느껴진다. 마니아는 자신이 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그 일이 직업과 동일하면 더욱 큰 시너지효과가 있을 것이다.

오늘 살펴보게 될 변상벽(卞相璧:1730~?)은 고양이 그림에 미친 사람이다. 영조년간에 활동한 변상벽은 도화서 출신의 직업화가이다. 본관이 밀양인 그는 자(字)가 완보(完甫), 호(號)가 화재(和齋)로 인물 초상화에 뛰어나 세칭 국수(國手)라 불리웠다. 말하자면 ‘초상화가’ 하면 변상벽으로 통했다는 뜻이다. 그런 소문이 지나친 과장은 아니었던 듯, 1763년과 1749년에 두 차례에 걸쳐 왕의 어진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여러 공신사대부들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 초상화 솜씨가 인정받아 화원으로서는 드물게 현감을 지냈다.

그러나 현재 ‘국수’의 솜씨를 확인해볼 수 있는 초상화는 거의 없고 대신 동물 그림이 남아 있다. 실제로 인물초상화와 동물화는 대상의 핍진성(逼眞)을 붓 끝에 표현해야 된다는 공통점 때문에 같은 분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래서 인물 초상화가와 동물화가는 거의 동일인인 경우가 많다. 초상화의 국수가 동물화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배경이 작용해서일 것이다.

고양이에 미친 사람

변상벽은 닭과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려서 ‘변고양이’, ‘변계(卞鷄)’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는데 그가 남긴 <고양이와 참새> 그림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평가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에는 참새가 시끄럽게 떠드는 나무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가고 있고, 땅바닥에 앉아 있는 고양이는 매끄러운 목을 돌려 그 고양이를 올려다보고 있다. 마치 대화하듯 서로 눈을 마주보는 두 마리 고양이의 모습이 무척 유연하다.

고양이를 잘 그린 전문가답게 변상벽은 고양이의 뒷모습과 앞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고목을 기어 오르는 갈색 고양이의 표정은 장난기가 가득 들어 있는 반면 바닥에 앉아 S자로 목을 뒤로 제낀 검은색 고양이는 그야말로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바닥의 담록색 풀과 잘 어우러진 검은색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고 노래한 이장희(李章熙:1900~1929)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가 생각난다. 그만큼 봄기운을 실감나게 잡아두었다.

이를 위해 변상벽은 고목과 고양이를 각각 다른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고목은 구륵(鉤勒:선으로 윤곽선을 먼저 그린 다음 그 안에 색을 칠하는 기법)으로 그린 반면 고양이는 잔붓질로 꼼꼼하게 그렸다. 그 결과 고목의 거칠음과 고양이의 부드러움이 대조되면서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마치 매끄러운 고양이털이 만져지듯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여기에 살아오르듯 힘이 들어가 있는 고양이 꼬리야말로 변상벽의 관찰력이 얼마나 탁월했는가를 반증한다. 완벽한 관찰력과 치밀한 세부묘사는 자칫 고목과 참새에게서 풍기는 화보(畵譜)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준다.

고양이의 상징

변상벽, <고양이와 참새> 부분

그렇다면 변상벽은 왜 고양이 그림을 그렸을까?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김두량(金斗樑:1696~1763)은 개를 잘 그렸고, 그보다 앞선 시기에 살았던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특히 말을 잘 그렸다. 그런데 변상벽은 개와 말 대신 고양이와 닭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유난히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많은 동물 중에 유난히 고양이만을 특화해서 그렸다는 것은, 좋아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그리게 되어 있다. 좋아하다보면 쳐다보는 횟수가 더 많아지게 되고, 자주 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이다. 모르긴해도 변상벽은 거의 매일 고양이를 관찰했을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취향 외에도 직업화가인 변상벽이 고양이와 닭을 그린 것은 그것을 요구하는 수요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생생한 고양이를 그려도 그걸 보아주는 눈이 없고 찾아주는 고객이 없었다면 취미삼아 몇 번 그리다가 말았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은 꼭 그만큼의 감상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은 증명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고양이 그림을 찾는 감상자는 어떤 의도로 찾았을까? 물론 단순히 감상만을 목적으로 그림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양이는 부(富)를 상징하고 참새는 기쁨을 상징한다. 기막히게 잘 그린 그림을 내 집에 걸어야 된다면 이렇게 상서로운 의미가 들어 있는 동물 그림은 어떨까?

한 가지 것에 미친 사람들

변상벽의 등장은 미술계의 판도가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18세기에는 미술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한가지 것에 특출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는 재주랄 것도 없이 그저 괴팍한 취미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벽(癖)에 기갈 들린 사람들이 버젓이 행동하는 시대였다.

특히 사대부들에서 중인층까지 확대된 서화애호 취미는 그 도가 지나쳐서 사람들의 비웃을 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예로 김광수(金光遂:1699~1770)를 들 수 있다. 서화수집과 감상분야에서 한 경지에 이르렀던 그는 “알려주는 사람 없이 혼자 깨달아 진위 판별에 틀림이 없었고, 가난하여 끼니를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지만 금석(金石)과 서화 감상으로 대신하였으머, 좋은 물건을 보기만 하면 당장 주머니를 터는 통에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할 정도”였다. 그의 수집벽은 조선에만 한정되지 않고 멀리 연경에까지 미쳤고 종일토록 고서, 명화, 연묵, 고동기 등을 사들이며 완상하는 데 보냈다.

이런 김광수에게 10대 후반부터 서화 품평과 수집벽을 배웠던 사람이 김광국(金光國:1727~1788이후)이었다. 김광국의 소장품 중에는 유럽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판화와 일본 우끼요에까지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그의 관심영역은 국제적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가들은 좋은 작품을 보고 자극을 받아 자신의 작품 제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시대 자체가 작가들을 키워준 것이다. 한 시대가 위대한 작가를 탄생시키는 것은 결코 작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조선 후기는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에 심취할 수 있는 분위기가 용인되고 부러움이 대상이 되던 시대.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정약전(丁若銓:1758∼1816)의 『현산어보((玆山魚譜)』같은 해양생물 백과사전이 탄생될 수 있었다. 조희룡(趙熙龍:1797~1859)이 매화 그림에 빠져 귀양살이의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전 존재와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비’에 미쳐 나비만 그렸던 남계우(南啓宇:1811~1888)는 어떠한가? 수없이 많은 나비를 관찰하고 세밀하게 그려 마치 곤충표본집을 완성한 듯한 남계우는 그래서 ‘남나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변상벽의 또다른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한가지 것에 미친 마니아들이 설치는 시대. 그 마니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프로로 활동할 수 있는 시대. 그 시대는 분명 행복한 시대일 것이다. 변상벽의 고양이그림은 그런 마니아들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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