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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story/옛그림보기

나도 한때는 호랑이였음을

by May born JCY 2006. 10. 8.
조정육의 옛그림 읽기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작자 미상의 <까치호랑이>



▲ 김홍도, 강세황 합작 <송하맹호도> 비단에 담채, 90.4×43.8cm, 호암미술관

모델이나 본보기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우선 불안하지 않아서 좋다. 안심이 된다. 앞서 간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은 길 없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선구자로서의 고뇌를 건너뛰어도 된다는 뜻이다. 전에 없는 새로운 형식을 취했을 때 겪어야만 하는 막막함이나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다. 더구나 그 모델작품이 이후 출현하게 될 여러 작가들의 가슴을 흔들어놓을 정도로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면, 그 작품은 표준작 또는 전범(典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 사람은 플라톤이었던가 아리스토텔레스였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 명제를 작품 속에서 실현시킨 많은 예술가들이었던가. 산에 비슷비슷한 봉우리들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유난히 눈에 띄는 봉우리가 있다 싶어 고개를 들면 그 봉우리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가장 높은 봉우리를 기준삼아 사람들은 등산을 한다. 표준작은 사람들이 언젠가 한번은 꼭 오르고 싶은 최고봉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홍도(金弘道:1745~1806?)와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함께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는 호랑이 그림의 표준작이라 말할 수 있다. 강세황이 소나무를 그리고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린 <송하맹호도>는 당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합작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되지만, 정교하면서도 생생한 호랑이의 표현과 짜임새있는 구도에서 작품의 완결성을 느낄 수 있는 가작이다. 가작 속에 두 사람은 각자의 흔적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세황은 화면 우측 상단에 자신의 호 ‘표암(豹菴)’을 따서 ‘표암화송(豹菴畵松)’이라 적었고, 김홍도는 좌측 하단에 ‘사능(士能)’이라 적었다. ‘사능’은 김홍도가 40대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호이다.

화면 윗부분에 소나무 둥치만 그려 넣고 가지 한줄기만 밑으로 뻗게 하여 공간감과 구성미를 동시에 획득한 작가의 노련미와, 호랑이의 멋진 몸매를 구석구석까지 감상할 수 있는 연출된 자세가 이 작품을 불멸의 ‘송하맹호도’로 올려놓았다. 산중을 평정한 호랑이답다. 형형하게 뿜어져 나오는 호랑이의 눈빛과 족보있는 집안임을 과시하는 등의 줄무늬, 그리고 꿈틀거리는 기운이 전신 끝까지 뻗쳐 있음을 강조하듯 힘있게 휘어져 올라간 꼬리 등이 호랑이를 산중의 왕으로 자리매김하여 준다.

물론 김홍도와 강세황이 소나무 아래 호랑이를 그리는 ‘송하맹호도’ 형식을 처음으로 창조해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김홍도보다 선배였던 심사정(沈師正:1707~1769)이 <맹호도(猛虎圖)>를 남기고 있고, 필자미상의 동일한 형식의 호랑이 그림이 여러 점 전해 내려오는 것을 보면 김홍도또한 당시 인기 있는 호랑이 포즈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다 해서 누구나 명작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합작품 이후 얼마나 많은 호랑이들이 화가들의 모델로 픽업되어 갔던가. 호랑이가 한 번 위대한 화가의 작품에 출현한 것이 계기가 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자, 그 뒤부터 호랑이들의 삶은 거의 개인 시간이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명시절, 산속에서 조용히 어슬렁거리던 개인적인 삶은 포기하고 공인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 중 몇몇 호랑이들은 화가를 잘 만나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고 어떤 호랑이들은 시간 속에서 잊혀져 갔다.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하고 쓸쓸히 사라져야 했던 은막의 스타처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화가들의 붓끝이었다.


작자미상 <까치호랑이> 종이에 담채, 93×60.5cm, 개인소장


표준과 파격

세상에 너무 고상하고 격식있는 음악만 있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아무리 종묘제례악이 웅장하고 장엄하다한들 판소리와 민요가 갖는 맛을 대체할 수 있을까. 클래식 음악의 장중함과 깊이도 좋지만, 사람의 애간장을 녹여 만든 유행가도 그 나름대로의 정서와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도 좋지만 이루마의 <KISS THE RAIN>도 좋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하는 느린 템포의 시조도 좋지만, ‘당신의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 철없이 보내 버린 내가 너무 미워서’ 하는 현철의 유행가도 좋다. 이렇게 규범적인 것과 파격적인 것이 뒤섞여 있어 세상의 음악은 아름답다.

이제 종묘제례악처럼 규범적인 김홍도, 강세황 합작의 <송하맹호도>에서 벗어나, 유행가처럼 편안한 호랑이 그림을 한 점 살펴보자.

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앉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송하맹호도>의 계보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나무 아래 호랑이’라는 제목이면 모를까, ‘맹호’라고 불러주기에는 어쩐지 격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맹호’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사나움이나 용맹스러움이 이 그림 속 호랑이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 호랑이가 ‘맹호가문’ 소속이라면 그 가문에서는 돌연변이가 태어 났다고 혀를 끌끌 차며 장탄식을 했을 것이다. 세상이 망하려니까 별게 다 날뛰누나, 하고.

이 호랑이를 그린 작가는 절제의 미를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세필(細筆)로 일일이 고생해서 털을 그려야하는 수고스러움을 버리고, 대신 진한 붓질 몇 번으로 도끼날같은 문양을 만들더니 이것을 호랑이털이라고 했다. 능청도 그런 능청이 없고 눈속임 또한 대단하다.

김홍도가 호랑이 꼬리에 기운을 넣기 위해 꼬리를 갈고리처럼 구부려 위로 올렸다면, 이 파격적인 호랑이의 주인공에게 꼬리는 그저 귀찮은 애물단지일 뿐이다. 쓸모없이 몸에 붙어있는 거추장스런 물건일 따름이다. 호랑이 꼬리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이렇게 대접을 못받는다. 그래도 아직 ‘다 산’ 호랑이는 아니라는 듯 꼬리 끝부분을 겨우 하늘 쪽으로 돌려 놓았다. 이 정도 힘은 남아 있어, 라고 하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 같다.

이 호랑이의 진짜 파격은 얼굴에 있다. 가슴팍과 꼬리의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 땜빵용으로 그려 넣은 동그라미 문양이 얼굴까지 이어져 있다. 동그라미가 얼굴에만 그려졌더라면 곰보자국처럼 보였을텐데 다행히 몸에 골고루 퍼져 있어 그 위험은 비껴갔다. 나름대로 내공을 갖춘 화가였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굳이 입을 벌리고 포효하지 않아도 ‘진골 출신 호랑이’로서의 위엄이 물씬 풍기던 김홍도의 작품에 비해, 이 호랑이의 얼굴에서는 도무지 위엄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황달 걸린 것처럼 누런 눈동자는 노인의 눈처럼 초점을 상실했다. 뼈대만 남은 코에는 가짜같은 콧수염이 달려 있고, 양쪽 머리끝에는 리본같은 귀가 꽂혀 있다.

호랑이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단서는 이빨 빠진 입의 표현에 있다. 내가 이래뵈도 한 때는 잘나가는 호랑이였어, 라며 가문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는 호랑이의 얼굴 위로 비굴한 웃음이 번진다. 물감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늙은 호랑이를 그리는 것이 지루했던 것일까. 화가는 ‘한물 간’ 호랑이의 턱을 반 정도가 잘려나가게 그린 후 그림을 끝내 버렸다. 김홍도였다면 어림없는 행동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 그림이 불쏘시개로 사라지지 않고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화가의 자부심도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이런 그림을 감히 완성작이라고 내보일 수 있었던 화가.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화가의 속내가 못내 궁금하다. 그러나 수많은 민화가 전부 그러하듯 민화의 작가는 언제나 무명씨(無名氏)라는 익명 속에 얼굴을 감춘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림이어서일까. 자꾸 들여다보면 어느 새 정이 들고 마는 한물 간 호랑이의 초상. 닭이 지나가도 무서워서 도망갈 것 같은 쇠잔한 호랑이의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내세울 것보다는 감추고 싶은 상처가 더 많은 나이가 되다보니 비록 탄력 잃은 껍질만을 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호랑이일지라도 호랑이로 살아준 것만으로도 더없이 고맙고 귀해 보인다. 쭈글쭈글한 피부를 가진 나의 아버지가 내 곁에서 숨쉬고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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