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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story/옛그림보기

가을에 만난 신윤복이 사랑한 여인

by May born JCY 2006. 10. 8.
조정육의 옛그림 읽기

신윤복의 <미인도>



▲ 신윤복, <미인도>, 비단에 담채, 113.9×45.6cm, 간송미술관

우리시대의 신조어 중에 ‘몸짱’과 ‘얼짱’이 있다. 몸매와 얼굴에서 단연 최고로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아직 국어사전같은 ‘뼈대있는’ 어보(語譜)에는 등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언어의 생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어찌되었든 아름다워지려는 여인들의 욕망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걸 보면 ‘미인’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런 미인이 존재하는 한 아름다운 꽃을 찾으려는 화가들의 눈도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해 왔다.

조선시대의 최고의 얼짱이라면 단연 신윤복의 <미인도>를 꼽을 수 있다. 신윤복이 선보인 미인은 머리에 큼지막한 가채(가짜머리)를 얹고서 노리개를 만지고 있다.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는 당시 여인들의 옷차림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당대 미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조선시대의 얼짱이 유행에 매우 민감했음을 말해준다. 예술 작품은 이렇게 작가가 입을 봉한 채 침묵을 지키더라도 시대라는 현장감을 놓치지 않는 법이다. 장안의 최고의 미인을 그린 이 작품은 시대성과 더불어 당시 사대부들이 미인을 바라보는 인식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신윤복은 정조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다. 그런데 그 당시 여인들의 사치가 얼마나 심했던지 머리 위에 얹는 가채를 장만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써서 나라에서는 한때 가채를 머리에 올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기까지 했다. 그런 가채를 그녀는 지금 머리에 당당하게 올리고 있다. 곱게 빗은 머리카락 때문인지 아니면 특별히 미인의 머리 위에 올렸기 때문인지 그녀의 가채는 실타래처럼 탐스럽다. 보기는 탐스럽지만 그녀의 머리 위에 탐스러움을 꽂아주기 위해 그녀에게 혼을 뺏긴 남정네는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했을까. 하긴 저 정도 미인에게라면 그정도쯤이야 별로 아깝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녀

신윤복의 여인은 무척 곱고 단아하다. 그녀의 얼굴은 속으로 단물이 배여 든 청포도처럼 젊음이 농익어 있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만 손을 대어도 팽팽한 젊음이 주절이 주절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열흘이 넘도록 피는 꽃이 없다는 뜻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단어가 있듯 이 그림속의 여인도 언젠가는 꽃처럼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지금 뭇 사내들의 가슴을 환장하게 흔들어 놓고 있다. 웃으려는지 토라진 것인지 그 속내를 파악할 수 없는 그녀의 표정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남정네들이 밤잠을 설쳤을 것인가.

신윤복(申潤福:1758-?)은 화원을 지냈던 얌전한 화풍의 아버지 신한평(申漢枰:1726-?)과 달리 자신만의 개성있는 그림세계를 고집했다. 그는 남녀간의 사랑, 양반과 한량이 기생과 어울리는 모습 등을 주로 화폭에 담아서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원’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대담한 그림을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신윤복의 그림은, 하마터면 고루하고 점잖다고만 생각할 수도 있는 조선 후기의 역사에 피를 돌게 했다. 그의 붓끝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었고, 적나라한 성풍속이 사실적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김홍도의 풍속화가 당시 서민들의 생활을 꾸밈없이 전해 주듯이 신윤복의 풍속화는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양반과 관련된 모습을 알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미인도」는 신윤복의 최고의 역작일 것이다. 이 <미인도>는 당대의 미인의 기준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당시 여인들의 헤어스타일과 패션경향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재미도 보여준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원래 우리네 여인들이 입었던 저고리가 두루마기처럼 길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저고리에 치마는 주름치마를 선호했던 것이 고구려 패션이었다. 이런 패션은, 옷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장식적인 용도로서가 아니라 몸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인 용도였음을 말 해 준다. 그 저고리가 시대가 변할 수록 점점 짧아지더니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후기가 되면 신윤복의 <미인도>처럼 젖가슴까지 올라가는 짧은 저고리로 바뀌어 버렸다. 대신 치마가 길어졌다. 게다가 소매까지 착 달라붙어 유난히 어깨가 작아 보인다. 그 밑에 항아리같이 넓은 치마라니...

이제 옷은 고구려 여인들처럼 실용적이어야 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여성스러움을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장식적인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옷도 유행을 따르게 되듯이 저고리 길이도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럴수록 그 옷이 감싸고 있는 여인들의 몸은 더욱 더 많은 남성들의 눈길을 붙잡게 된다. 남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질러 놓고 여전히 속내를 감추고 있는 그녀의 꼭 다문 입술.

작자미상, <미인도>, 종이에 담채,
114.2×56.5cm,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신윤복의 섬세한 손길

이런 미인을 만들기 위해 신윤복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녀에게 투자했을까. 그녀를 향한 신윤복의 눈길은, 대리석의 여인 갈라테아에게 따뜻한 인간의 피를 돌게 만든 그리스 신화속의 피그말리온의 사랑만큼 간절하다. <미인도>는 그녀에 대한 뜨거운 마음 없이 칠한 붓질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적어도 그림 그리는 순간만큼은 신윤복은 이 여인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 여인이 설령 누군가의 소첩이었거나 장안의 이름난 기생이었을 지라도, 그래서 누군가 돈 많은 사람의 부탁을 받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주었을 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는 신윤복의 여인이다.

신윤복은 그 사랑의 감정을 감탄스러울 정도로 정교한 붓질 속에 남겨두었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마다 배여 있는 섬세함. 귀밑으로 살짝 빠진 머리카락. 옷속에 감추어진 열정만큼이나 진한 보라색 옷고름. 삼작노리개를 만지며 누군가를 생각하는 여인의 연정.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이 보이는 법이다. 뭇 남성들을 뇌쇄시킬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춘 그녀에게서 가벼운 요염함 대신 청아함과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그녀를 생각하는 신윤복의 마음의 반영일 것이다. 그녀를 향한 마음을 그렇게 붓질 속에 녹여두고서 제시에는 짐짓 무심한 척 이렇게 적었다. ‘책상다리를 한 여인의 가슴 속에 감추어진 마음을 능숙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녀 이후

신윤복이 사랑한 여인이 그의 붓끝에서 불멸의 미소를 짓게 되자 그녀를 닮고자 하는 여러 점의 미인도가 제작되었다. 물론 각각 다른 화가들이 그렸을 것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미인의 모습은 언제나 화가들을 자극해서 붓을 들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탓을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 이후의 등장한 미인도의 모습은 역시 그의 ‘여인’처럼 배경없이 미인 한 사람만 그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 신윤복의 화풍에 가장 가깝게 그린 그림이 일본 국립동경박물관의 작자미상의 <미인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소재와 화풍 때문에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채를 얹은 머리 모양과 반달모양의 눈썹, 짧은 저고리와 풍성한 치마폭이 언뜻 신윤복의 여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윤복이 <미인도>에 마음을 담았다면 작자미상의 <미인도>에는 작가의 재능을 담았다. 미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가 품고 있는 속내가 궁금해지는 것이 신윤복 미인도의 특징이라면, 그저 잘 생긴 외모에 감탄만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작자미상의 <미인도>이다. 붓끝에 마음을 담고 안담고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일까.

아무리 비슷하게 그려도 진짜 혼을 실어서 그린 그림과 재능으로 그린 그림은 뭐가 달라도 크게 다르다. 이 가을에 사랑한다면 미인을 사랑할 일이다. 사랑한다면 깊이 사랑할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을 준다면 그 여인은 누구나 미인이 될 것이다. 신윤복의 여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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