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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story/옛그림보기

지금 나, 떨고 있니?

by May born JCY 2006. 10. 8.

조정육의 옛그림 읽기

김홍도와 이인상의 풍속 그림 읽기



▲ 김홍도, <서당>(풍속화첩 중), 종이에 담채, 27×22.7cm 국립중앙박물관

훈장님과 울고 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키득키득 웃고 있는 친구들이 양쪽으로 나누어 앉아 있다. 그 가운데서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책을 앞에 펼쳐놓고 앉아 있는 친구들은 우는 친구에게 동정적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눈치다. 대님을 풀고 있는 아이는 서러워 죽겠는데, 그를 지켜보는 친구들은 야속하게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는 듯 킥킥거리고 있다. 울고 있는 친구만 왕따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공부바치기

오늘의 주인공은 책과 훈장을 뒤로 하고 대님을 풀고 있다. 오늘은 ‘공부를 바치기로 한 날인데 아침까지 외워오기로 한 분량을 다 외우지 못해 종아리를 걷어 올리는 중이다. 오른손으로는 대님을 풀고 왼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는 아이는 체구가 유난히 작아보인다. 머리카락도 어수선한게 꼭 그 아이 마음같다.

김홍도는 인물을 배치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붓을 잡지는 않는다. 치밀한 계산 속에서 자리를 배정해준다. 전체적인 인물 모습을 보자.

오른쪽 맨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아이는 이 서당에서 가장 어려 보인다. 머리를 땋아 늘여뜨리기는 했으나, 더풀더풀하게 옆으로 삐져 나온 머리카락이 더 많을 정도로 아직은 어린 아이다. 얼굴 또한 가장 앳되어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입고 있는 쑥색옷과 훈장옆의 벼루함에 짙은 채색이 들어 있어 그림에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김홍도, <서당> 부분도

얼굴을 전혀 보여주지 않은 막내 옆에는 막내보다 조금 소년다운 체구를 지닌 학동이 앉아 있다. 머리모양은 막내보다 조금 더 정돈되어 있지만 헝클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의 옷매무새는 맨 뒤쪽에 갓을 쓴 학동으로 갈수록 더 단정하고 정돈되어 있다. 얼굴이나 머리 모양도 훨씬 깔끔해보인다.

옷 한 벌이면 사계절을 입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여러 벌의 옷을 풀먹이고 다림질하여 빳빳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 갓 쓴 학동 앞에 앉은 소년의 모습은 부잣집 도련님처럼 입성이 반듯하다. 이렇게 문간에 앉은 막내에서 맨 안쪽 훈장님곁에 앉은 갓 쓴 학동까지 가는 사이 가정형편이 점점 더 나아져감을 보여준다.

떨고 있는 아이

지금 대님을 풀고 있는 주인공은 회초리 맞을 생각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 아이의 떨리는 심정이 짧게 끊어진 옷주름선에 나타나 있다. 다른 친구들의 옷주름선처럼 계속 이어서 그린 것이 아니고 웬지 자신없는 듯 우물쭈물 선을 잇대고 있다. 조금이라도 매맞는 시간을 늦추어 보려는 듯 주저주저하며 대님을 푸는 아이의 심정이 나타나 있다.

대님을 푸는 아이의 오른손은 또 얼마나 후들거릴 것인가. 왼팔의 옷주름선이 다른 친구들의 옷선과 별차이가 없다면 오른손은 다르다. 온 신경이 매맞을 종아리에 모아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른팔과 다리에 진한 선을 사용했다. 마치 덧칠하듯 그려넣었다.

요즘 만화에서 떨고 있는 사람을 그릴 때, 짧은 선을 구불구불 이어지듯 그리는 기법과 다르지 않다. 그림은 소리가 없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그림이다. 웃음소리, 훌쩍이는 소리, 야단치는 소리, 회초리 때리는 소리, 그리고 훈장님의 눈치를 봐가면 몰래 옆친구와 소곤거리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그림이다.

김홍도는 조선 최고의 화가였다. 더 나아가 한국미술을 통털어 김홍도는 가장 위대한 화가이다. 그는 산수, 인물, 화조, 영모 등 못 그리는 분야가 없었다. 보잘것없는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까치 한 마리를 그려도 그의 붓질이 가 닿으면 달라진다. 갑자기 나뭇가지에 생명력 이 느껴진다.

야트막한 언덕 옆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잡풀이 자라고 있어도 김홍도의 붓질 속에서는 비범한 장소가 된다. 달빛 아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도 김홍도의 눈을 거치면, 무수한 신비와 아름다움이 깃든 추억의 징표가 된다.

김홍도의 그림이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그림속에 시대의 진정성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멀찌감치 물러나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그리지 않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림. 그것은 김홍도가 그 시대속에 과감히 몸을 던졌기 때문에 획득할 수 있는 진정성이다. 김홍도는 시대성과 더불어 그림속에 진정성을 그려넣을 수 있는 위대한 화가였다.

분위기가 삼엄한 선비 그림

이인상(1710~1760)이 그린 <송하수업>에서 한 선비가 동굴 입구처럼 둥근 바위와 낙락장송 아래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꼿꼿하게 앉은 나이 든 스승은 얼마나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지 오른손을 연신 움직이고 있다. 혼신의 힘을 다 해 자신의 지식을 전해주려는 스승의 의지가 진한 먹으로 그린 그의 옷주름선에 투영되어 있다.

이인상, <송하수업>, 종이에 담채, 28.7×27.5cm



배움의 자세도 진지하긴 마찬가지다. 몸을 구부린 채 바닥에 종이를 펼쳐 놓은 제자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인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붓을 들어 먹을 적실 자세가 되어 있다.

이 그림을 두고 이동주 선생은 ‘분위기가 삼엄한 선비 그림’이라 했다. 깔깔하게 점을 찍듯 그린 나무와 바위. 국화꽃이 핀 가을날, 스승과 제자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 햇살. 투명하게 부는 바람 속에서 행여 시상이라도 떠오를까봐 꺽어다 놓은 ‘늙은 학생’ 옆의 국화꽃 한송이.

김홍도의 <서당>에서 느껴지는 소란스러움이 이 그림에서는 정적과 고요함으로 대체되어 있다. 킥킥거리며 손을 가리고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훌쩍이는 매맞는 아이 대신 선비의 고고함과 정신적인 교감에서 오는 무언의 감동이 들어 있다.

이젠 큰소리 내어 ‘공부를 바치게’하는 강요 없이도 스스로 찾아서 글 읽을 줄 알고 시 지을 줄 아는 나이. 그래서 나이 들어 하는 공부는 그만큼 절실하고 간절하다. 책속에 들어 있는 한 귀절 한 귀절을 대할 때마다 가슴으로 받아들일 줄 안다.

이인상, <송하수업> 부분도

능호관 이인상은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의 후손이었으나 서출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신분적인 한계를 느끼며 살아야만 했다. 벼슬은 현감까지 지냈는데 그것도 관찰사와 사이가 나빠 일찍 사퇴하였다. 가정형편이 어렵고 몸은 병약하였는데 성격은 강직하고 매우 고지식하였다. 외출을 하다 길거리에서 당색이 틀린 사람을 만나면 되돌아 와 버릴 정도로 자신이 따랐던 노론의 입장에 충실하였다.

그의 그림은 성격만큼이나 깔끔하고 담백하여 속기를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설송도>에서 느껴지는 서릿발같은 문기는 조선시대 선비의 고고함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차라리 목숨을 던질지언정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선비정신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살았고, 그런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던 시대를 경이롭게 만드는 그림이 이인상의 그림이다.

스승과 제자는

스승과 제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지난 겨울, 영남학파의 거두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제자들을 길렀다는 경주의 옥산서원에 갔다. 입이 얼어 붙어 옆사람과 대화하기가 힘들 정도로 춥던 날, 옥산사원에는 뼈속까지 스며드는 냉기로 굳어 있었다.

그 얼어붙은 서원의 마루바닥에 앉아있자니 여러가지 생각이 오고갔다.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도 연신 몸이 흔들릴 정도로 춥던 날, 스승의 가르침을 찾아 이 먼 산골까지 걸어 들어왔던 유학생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추위에 손등이 부르트고, 발바닥에 동상이 들어도 찬 마루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그들이 배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런 가르침을 구하려는 열망과, 자신이 평생 공부한 지식을 전달해주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간절히 살아있는 걸까.

자신이 배우는 입장이든 가르치는 입장이든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 하는 것. 설령 어떤 사람이 내 등뒤에서 ‘저 사람은 너무 고지식해.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라는 소리를 하며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던 사람들. 그 자리가 비록 시골 촌구석의 이름없는 훈장자리이고, 평생 공부만 하느라 벼슬자리 근처에도 못가 본 백면서생의 자리라해도 그 자리를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여기까지 와 있다. 그들에 의해 역사의 그물이 촘촘하게 짜여졌다. 이젠 나도 역사의 그물코가 되고 싶다.

김홍도의 그림앞에 서면, 아이들의 글읽는 소리와 깔깔거리는 소리가 낭자하게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이인상의 수업장면을 보면 가르치는 사람의 진지함과 소명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모름지기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소중한 장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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