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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story/옛그림보기

꽃을 사랑한 화가들

by May born JCY 2006. 10. 8.
조정육의 옛그림 읽기

심사정의 <딱따구리>, 남계우의 <화접도>



▲ 심사정의 <딱따구리>, 비단에 채색, 25X18cm, 개인 소장

지금 용인 호암미술관에 가면 화려하게 핀 모란을 볼 수 있다. 땅 위에 심은 모란은 아직 피기 직전이지만, 미술관에서는 “모란”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매화꽃은 져 버린 지 오래 되었고, 그 아쉬움을 달래 주려는 듯 현란하게 피어대던 벚꽃도 눈송이처럼 바람에 날려가 버린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목련도 꽃보다는 잎사귀가 더 많이 자라 있다. 꽃잎을 떨어뜨린 나무들이 여름을 향해 본격적으로 치달을 준비를 하고 있는 막간에, 숨막히는 향기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라일락과 박태기나무꽃이 푸짐하게도 피어 있다. 어디 그 뿐이랴. 조팝나무와 철쭉나무가 제 세상을 만난 듯 바위틈새에서 거침없이 꽃봉오리를 열어 제끼자 민들레와 제비꽃은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이렇게 꽃들이 지치지도 않고 사방에서 피어날 때, 화가들의 마음도 덩달아 피어난다. 설레임으로 물결친다. 겨우내 참고 참았던 기다림이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차올랐을 때 드디어 개화(開花)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개화는 상사병 환자가 죽음 직전에 내뱉는 날숨처럼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피어나고 싶은 열망과 사랑 받고 싶다는 갈망으로 충만하다.

꽃들이 벙그러지면서 설레임으로 물결칠 때 화가들은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붓을 잡는다. 빨리 터트리고 싶은 조급함과 열망으로 꽃들이 붉게 피어날 때 화가들의 가슴도 붉은빛으로 물든다. 개화하는 꽃의 설레임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심사정(1707-1769)의 <딱따구리>이다.

딱따구리는 한문으로 ‘탁목조(啄木鳥)라고 부른다. 나무를 쪼는 새라는 뜻이다. 그림 속의 딱따구리는 그 이름에 어울리듯 붉은 매화 등걸을 ‘딱딱딱’ 소리가 나게 부리로 쪼고 있다. 나무껍질 속에 들어 있는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 소리에 놀란 매화꽃이 ‘뚝’하고 떨어지고 있다. 탐스러운 꽃이 나비처럼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다.

떨어지는 매화꽃에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니까 공간을 가르며 떨어지는 꽃잎은 ‘탁목조’의 의성어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림은 ‘소리없는 시(無聲詩)’요, 시는 ‘소리가 있는 그림(有聲畵)’이라는 왕유(王維:701-761)의 시학이 절묘하게 형상화된 셈이다.

구륵(鉤勒:선으로 윤곽선을 먼저 그린 다음 그 안에 색을 칠하는 기법)으로 그린 늙은 매화나무는 연륜이 오래되었음을 암시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꽃이 허다하지만 유난히 매화꽃이 감동을 주는 것은 죽음을 뚫고 나온 꽃이기 때문이다. 생명 있는 존재들이 서슬 퍼런 추위 때문에 모두 숨을 죽이고 고개를 들지 못할 때, 매화꽃은 보란 듯이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피어난다. 가슴 속에 간직한 사랑을 기어이 꽃피우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바램이 연약한 꽃잎을 용감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피어난 꽃은 어떤 추위로도 해칠 수 없다. 게다가 그 꽃잎의 부드러움이라니.

<딱따구리>를 그린 심사정은 역적의 후손이었다. 할아버지가 왕을 독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한 후, 역적의 자손으로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죄인의 자손인만큼 그가 양반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벼슬길에 나아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쓰라림과 모욕감을 감내하면서 가난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형을 거부하지 않고 그림으로 풀어냈다. 몇 마디 말로 가둘 수 없는 시련을 겪어야 했지만, 한 시대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남종문인화의 대가로 우뚝 섰다.

견디기 힘든 인생의 독기를, 붓을 들어 털어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삶의 쓰라림을 쉽게 하소연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절규하지 않았다. 매화등걸이 수십 년의 겨울을 견디면서도 가장 아름답고 고운 꽃을 피워내듯 그도 자신만의 꽃을 피워냈다. 그 꽃이 바로 <딱따구리>다. 가장 깊은 상처를 입어 본 사람이었기 때문에 매화꽃의 눈물겨운 개화 의지를 알고 있었다. 심사정이 가장 부드러운 붓질로 매화꽃을 그려냈을 때 그의 쓰라린 인생은 이미 보상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대체 그 어떤 화가의 손길이 <딱따구리>같이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심사정이 겨울을 뚫고 나온 매화를 발견했다면, 남계우(1811-1888)는 화사한 봄 속에 핀 꽃과 나비에 넋을 빼앗겼다. 나비를 워낙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심사정처럼 처절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벼슬도 정3품에 이르렀다. 내면 깊숙한 곳까지야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그만하면 무난하게 보낸 인생이었다.

화사한 봄 속에 핀 꽃과 나비를 그린 남계우의 <화접도>.
비단에 채색, 27X27cm 호암미술관

그 때문인지 그가 그린 그림은 대부분 화려한 꽃과 나비가 많다. 현재 호암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화접도> 역시 꽃과 나비가 주인공이다. 그림 상단에 그려진 검고 노란 나비는 그 화사한 색감과 부드러운 자태 때문에 마치 꽃 이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연녹색 잎사귀 위에 앉아 있는 청색 나비와, 하단의 나비 또한 모란 잎사귀인 듯 자연스럽다. 화사한 봄날, 꽃이 나비고 나비가 꽃이다. 일시에 피었다 지는 모란꽃보다 더 화려한 나비를 색깔별로 그려 넣음으로써 오방색에서 느낄 수 있는 화사함이 꽃향기처럼 진하게 퍼져 나온다. 정교한 필치로 세밀하게 묘사한 다섯 마리의 나비 속에서 남계우의 별명이 가진 무게를 느낄 수가 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바야흐로 꽃과 나비가 춤추는 계절이 한창이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러니만큼 위로는 왕공사대부들을 비롯해서 아래로는 평범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모란꽃을 좋아했다. 상징을 좋아하고 의미를 갖다 붙이기 좋아했던 사대부들은 매난국죽을 좋아했다. 일반 백성들과 뭔가 다른 특화된 자신들의 캐릭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자를 해독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꽃의 상징성. 지조와 절개와 은일과 은둔이 지닌 매난국죽은 사대부들이 지향하는 세계였고, 그들을 그들답게 구분해주는 징표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며 상징 없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식자들은 항상 명확하게 규정하기를 좋아하고 정리가 가능한 공식을 만들어낸다. 특별히 사대부들이 매난국죽을 좋아해서 그린 경우도 있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꽃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얼음 같은 추위 속에서 거침없이 피어나는 꽃을 보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아름답다. 화사한 모란꽃 주위로 색색의 나비들이 모여드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하다. 그러나 꽃은 꽃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사랑하는 남자가 내 곁을 떠나갔다. 이제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나서면, 그는 영원히 내 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걸어가던 그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마당가에 핀 꽃을 보면서 말했다.
“아...라일락!”

그 후 라일락은 천경자의 그림 속에 메아리처럼 젖어 들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 사라지지 않는 그의 기억처럼...그 기억이 아픔이 되고 절망이 되고 분노가 되어 세월 속에 눅진하게 풀어질 때까지 라일락은 그녀를 작가로 살아가게 몰아세운 지독한 고독이었다.

이 봄이 사라지기 전에 그런 가슴 아픈 사연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꽃이 지고 나면 ‘삼백 예순 날을 하냥 섭섭해’ 울더라도 ‘찬란한 슬픔의 봄을’ 겪어 봤으면 좋겠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은가. 사랑은 아프기 때문에 사랑이듯이. 곧 져 버릴 아름다움과 아픈 사랑을 영원 속으로 끌어 들이고자 화가들은 꽃을 그렸다. 꽃이 부귀를 상징한다느니 지조를 의미한다느니 하는 말은 그저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꽃을 사랑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위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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